더글라스 케네디 '모멘트'
빅픽쳐, 위험한 관계, 그리고 파리 5구의 여인 순으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읽으면서 점점 작가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졌다. 그래서 모멘트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데(미루고 있었던게 아니라 안 읽을 작정이었다.ㅠㅠ), 아니 이걸 왜 진작 안 읽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베를린 장벽..
이 이야기는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동독, 서독의 나라에서 느낀 짧은 순간의 사랑을, 장벽이 사라진 독일이 되어 서로의 사랑에 늦은 확인을 하는 사랑이야기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너무도 다른 삶을 살수도 있다는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학교때 처음 접했던 시가 생각이 났다.
이 시를 읽으면서 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양갈래 길에서 선택이라는 걸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내게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나약한 생각도 했었는데...
가보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그 때문에 그랬는지, 지금도 과거의 한 순간, 한 순간의 선택의 후회로 오히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토마스가 페트라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선택을 했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26년이 지나 페트라의 부고와 노트 2권을 받는 대신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 수 있었을지도...
토마스와 헤어진 후에, 토마스에 대한 페트라의 마음도, 또 평생 죄책감에 부정하려 하면서도 그리워 하며 산 토마스의 마음도 내게 고스란히 느껴져 오랜만에 눈물 흘리며 보았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순간은 그저 '하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인생은 단지 의미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라 생각해.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인 순간들의 합.
(모멘트 568쪽)
어쨌든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선택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좋은 일이 있을 꺼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지 않은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뜻대로 완성해 가야 한다.
완성.
인생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잃어버린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
(모멘트 590쪽)
하지만 나는 더없이 깊고 순수한 사랑을 경험했다. 잃어 버렸다가 찾아냈다. 찾아내고 잃어버렸다.
그 사랑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아무리 짧은 찰나였다 해도...
(모멘트 591쪽)
선택이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해피엔드로 끝날 수도 있다.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은 늘 앞으로 뻗어 있다. 우리는 싫든 좋은 그 길을 지나가야 한다.
(모멘트 591쪽)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순간이 있다.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순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순간, 우리 앞에 놓인 순간.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얻을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는 순간.
우리는 수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찰나라도 순간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모멘트 592쪽)